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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ㅣ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展

by 아트래블* 2019. 4. 19.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展ㅣ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0412 - 0908




“Go to hell with your money. I refuse this prize.”


1964년 지금은 구겐하임 펠로우십이라 불리는 미술계의 권위 있는 상, 구겐하임 어워드를 거절한 아스거 욘이 주최 측에 보낸 메시지다. “이 상금을 가지고 넌 지옥에나 가라. 난 상을 받지 않겠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어떤 미술관도 어떤 제도도 나의 예술의 가치에 대해 평가할 수 없다. 나의 예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관객뿐이다.” 이 사건은 단번에 아스거 욘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누구인가?


WRITE 이보현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에디터)  ALL RESOURCE 국립현대미술관



아스거 욘이 개발한 스포츠 '삼면축구 ㅣ 2019. 04. 2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전경.



20세기 '대안적 미술가' 아스게르 요른 아시아 첫 개인전


1950∼1970년대 사회 참여적 예술운동을 주도한 덴마크 미술가 아스게르 요른(아스거 욘·1914∼1973)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12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개막한다.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전은 요른의 예술을 회화보다는 '대안적 언어'라는 관점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시도로 덴마크 실케보르그 요른 미술관과 협력해 회화와 조각, 드로잉, 사진, 출판물, 도자, 직조, 아카이브 등 9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장은 ▲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 대안적 세계관, 북유럽 전통의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전 첫 번째 섹션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욘이 협업한 타피스트리 작업이 걸려있다.



첫 번째 주제에서는 고전적 미술 언어의 틀을 깨는 아스거 욘의 초기 작업(1930~40년대)을 살펴본다. 


욘은 예술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욘은 피카소나 미로 등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한 ‘전환’을 시도하며 다양한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두 번째 섹션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욘의 사회적 행보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들로 채워져있다.



두 번째 주제에서는 아스거 욘의 사회적,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는 그룹 활동‘코브라(CoBrA)’,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SI)’ 등을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전경



1948년 결성된 코브라는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앞 글자에서 따온 명칭으로, 여기서 욘은 공동체 활동과 연대, 창의성에 바탕을 둔 대안적 문화를 실험하고자 했다. 


1957년 결성된 SI는 예술의 상품화를 지양하고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며 예술적 창의력을 일상생활에 접목시키고자 했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 마련된 아스거 욘이 촬영한 필름 원본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가져온 아스거 욘의 작품이 담긴 화물박스를 전시 공간 디자인에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세 번째 주제에서는 북유럽 전통으로부터 대안적 이미지를 탐구한 아스거 욘의 연구를 살펴본다. 


욘은 SI를 떠나 1961년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the Scandinavian Institute for Comparative Vandalism, SICV)을 설립했다. SICV는 스칸디나비아 중세 예술 연구를 통해 북유럽 문화가 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아스거 욘이 개발한 스포츠 '삼면축구'. 덴마크 욘 미술관에 설치된 사이즈와 거의 흡사하게 제작하였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관객 참여형 작품 <삼면축구>를 선보인다. 


<삼면축구>는 아스거 욘이 고안한 경기 방식으로, 세 팀이 동시에 경기를 진행하여 실점을 가장 적게 한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골 득실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일대일의 경기와 달리, <삼면축구>는 세 팀의 공격과 수비가 균형을 이뤄야 승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스거 욘이 냉전시대 미·소 양국의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예술을 통해 찾고자 한 대안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덴마크 출신의 예술가 아스거 욘(Asger Jorn, 1914-1973)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덴마크를 넘어 북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로 카렐 애펠(Karel Appel) 과 함께 코브라(CoBrA) 그룹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코브라는 20세기 중반 중요한 추상화가 그룹을 배출한 유럽의 도시, 즉 코펜하겐, 브뤼셀,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첫 글자를 따 명명된 미술 그룹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그가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전통적인 풍경화 위에서 만들어졌는데, 아스거 욘은 그 위에 에 독특한 추상화나 괴물 같은 형태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예상치 못한 것, 미지의 것, 우연한 것, 무질서한 것, 불합리한 것, 불가능한 것에 의해 창조적인 사고가 끊임없이 시작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14년 3월 3일 덴마크 Vejrum 에서 태어난 이 젊은 예술가는 1936년 파리로 가서 페르난드 레거의 사립 미술학교(Fernand Léger’s private art school) 에 입학을 했고, 이듬해 덴마크로 돌아와 코펜하겐에 있는 왕립 덴마크 미술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CoBrA 외에도 아스거 욘은 글쓰기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공간을 향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작품들로 가이 디버드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운동(Guy Debord’s Situationist International) 등의 사회 참여적 예술운동에 기여를 했다. 이후 북유럽 전통 예술을 연구하여 미국과 소련이 양립하는 세계 논리에 제3의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렇게 아스거 욘은 1973년 5월 1일 덴마크 아르후스(Aarhus)에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렸다. 


2010년 덴마크의 실케보르 미술관은 그를 기리기 위해 박물관 욘(Museum Jorn)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아스거 욘(Asger Jorn) 의 작품들은 뉴욕의 현대 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 박물관의 소장품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작품




Asger Jorn (Danish, 1914–1973)


Biography


Painter Asger Jorn (Danish, 1914–1973) first became well known as a co-founder of the artists’ group CoBrA in 1948, which questioned the dominance of French Surrealist artists and fostered an expressive and spontaneous formal style. Jorn originally studied to be a teacher, before taking up painting in 1930. 


His first works included landscapes and portraits, influenced by 1930s Danish art. In the mid-1930s he experimented with abstracted forms, and went to Paris to work on an exhibition pavilion designed by famous architect Le Corbusier for the upcoming Paris World Exhibition. 


During World War II, he returned to Denmark fleeing German occupation, and after the war co-founded CoBrA, an acronym taken from the founding artists’ home cities of Copenhagen, Brussels, and Amsterdam; the group had their first large-scale exhibition in 1949. In 1957, Jorn helped combine CoBrA and other progressive groups to form the Situationist International group, which rejected the lifestyle foisted on society by capitalism. 


Jorn participated in documenta II in 1959 in Kassel, receiving widespread international attention for his work, and later became notorious for rejecting a Guggenheim Fellowship in 1964. He is known for his paintings, lithographs, and etchings, and experimented with spontaneous line and semi-figurative representation, two fundamental aspects of the CoBrA visual language. 


He is further recognized for his overpainting of inexpensive 19th century works that he collected at the flea markets, in series he called Modifications or Défigurations, and has also received acclaim for his work with ceramics, collage, and sculpture. 


After a period in which he focused on Danish contemporary photography, he resumed painting and produced a significant number of works between 1970 and 1972. 


Jorn died in 1973, and a retrospective of his work opened the same year at the Kestner Gesellschaft in Hannover; recent retrospectives of his work have been held at the Kunsthalle Kiel in Germany, and at the Centre Pompidou in Paris. 


Jorn was not only a prolific artist in diverse mediums, but was also an accomplished writer and theorist, and published several written works on philosophy, economics, archaeology, and aesthe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