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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이정진 : 에코 – 바람으로부터

by *아트래블 2018.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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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1989년부터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이정진의 아날로그 프린트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한다. 전시는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스위스 빈터투어 사진미술관 (FOTOMUSEUM WINTERTHUR)과의 공동주최로 개최되는 기획전이다. 


2016년 스위스 빈터투어 사진미술관, 2017년 독일 볼프스부르크 시립미술관(Städtische Galerie Wolfsburg)과 스위스 르 로클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Le Locle)을 순회한 후,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더욱 확장된 형태로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뿌리깊은 나무’ 사진기자 출신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이정진 작가의 작품전인데, 작가 이정진은 뉴욕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국제적으로 더 잘 알려진 작가다. 


“작가는 냉철한 눈으로 그곳에 존재하는 고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본다.” '현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프랭크는 제자 이정진의 '미국의 사막' 작품을 "인간이라는 야수가 배제된 풍경"이라고 묘사했다.


이정진 작가가 뽑아내는 사진의 질감은 매우 독특하다. 한지에 붓질의 흔적이 있다. 사막의 풍경이라는데 잡목 한 그루, 바위 두어 개를 꽉 차게 배치했다. 동양화에서 즐겨 그리는 소재다. 고졸한 기운까지 감돌아 언뜻 수묵화 같은 느낌이 난다. 하지만 사진이다. 한지에 인화한 사진작품인 것이다. 


붓으로 한지에 감광 유제를 바르고 그 위에 직접 인화하는 수공 방식으로 섬세함과 깊이를 더한 아날로그 프린트 작업을 통해 재료와 매체 실험을 지속해왔다. 덕분에 피사체가 갖고 있는 원초적 생명력과 추상성은 한지 위에서 묵직한 소리를 낸다. 


1990년대 초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잡아낸 기이하고 비현실적 공간을 모은 ‘미국의 사막’ 연작을 비롯해 한국의 석탑을 위아래 대칭으로 구현한 ‘파고다’, 녹슨 숟가락이나 의자 등받이 같은 일상의 물건을 전통 수묵화처럼 표현한 ‘사물’ 등 11개의 아날로그 프린트 연작 중 대표작 70여 점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사막>(American Desert, 1990~95), <길 위에서>(On Road, 2000~01)을 비롯하여 총 11개의 아날로그 프린트 시리즈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고유의 질감과 물성, 수공적 작업 방식으로 독특한 시각 언어를 구축한 이정진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전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미국의 사막 III>(1993~94), <무제>(1997~99), <바람>(2004~07)시리즈의 일부 작품들과 작가가 한지에 인화하는 암실 작업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도 함께 공개된다. 작가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대규모로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이정진의 작품 세계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about 이정진 작가


이정진(1961- )은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하였으나, 사진에 더욱 매력을 느껴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고, 졸업 후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기자로 약 2년 반 동안 근무하였다. 작가는 예술적 매체로서의 사진에 대한 열정을 품고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2011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프레데릭 브레너(Frédéric Brenner)가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 제프 월(Jeff Wall) 등 세계적인 사진작가 12명을 초청하여 진행한 '이스라엘 프로젝트'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이를 통해 국제 사진계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그의 작품은 휘트니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FNAC) 등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에 소장되었으며, 2013년 동강사진상 수상을 비롯하여 2017년 국제 사진 아트페어인 파리 포토(Paris Photo)의 '프리즘(Prismes)'섹션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사진이라는 고정된 장르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작업 방식 및 인화 매체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지를 발견하였다. 그는 전통 한지에 붓으로 직접 감광 유제를 바르고 그 위에 인화하는 수공적인 아날로그 프린트 기법을 통해 매체와 이미지의 실험 및 물성과 질감을 탐구했다. 이로 인해 그의 작업은 재현성과 기록성, 복제성과 같은 사진의 일반화된 특성에서 벗어나, 감성과 직관을 통한 시적 울림의 공간을 보여준다.


정형화된 사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작가는 인화용지를 종이 키친타월 잡지 등으로 다양하게 시도하다 1990년대 사막 연작을 찍기 시작하면서 한지에 주목했다. 동양화 붓으로 그린 듯한 허름한 가옥이나 사막의 모습뿐 아니라 뭘 찍었는지도 모르는 수묵 추상화 같은 작품도 있다. 영화 스틸 컷을 연상시킨 듯 배경에 검은색 테두리를 두른 것도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이미지들이다. 작가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 이미지를 보는 나의 느낌, 풍경 안에 감정이 이입된 상태”라고 말했다. 


카메라의 출현 이후 회화는 추상의 길을 걸었지만 또 다른 극단에서는 사진인양 극사실주의로 치닫기도 했다. 사진 역시 ‘회화인 척’하기도 했다. 이 작가의 작품은 ‘동양화인 척’하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시는 <미국의 사막>(American Desert, 1990~95), <무제>(Untitled, 1997~99), <파고다>(Pagodas, 1998), <사물>(Thing, 2003~07), <길 위에서>(On Road, 2000~01), <바람>(Wind, 2004~07) 등 작가가 1990년과 2007년 사이 20여 년 간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11개의 아날로그 프린트 연작 중 대표작 70여 점을 재조명한다. 


각 연작들은 사막의 소외된 풍경, 일렁이는 바다와 땅의 그림자, 석탑, 일상의 사물 등 작가의 감정이 투영된 대상과 이에 대한 시선을 담고 있다. 전시는 각각의 피사체가 지닌 원초적인 생명력과 추상성을 드러내며 화면 속 시적 울림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이정진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별도의 액자 없이 한지 프린트 원본 그대로를 볼 수 있게 설치되어, 아날로그 프린트 작품의 독특한 질감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작품소개


사물 Thing, 2003~07 

「사물」 연작은 오래된 토기항아리, 녹슨 숟가락, 의자 등받이와 같이 일상적인 사물들을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담고 있다. 크고 흰 한지 위에 부유하는 듯 보이는 흑백의 이미지들은 익숙하게 여겼던 사물들을 낯설고 새롭게 보여준다. 전통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전달하는 이 사진들은 여백의 공간 속에서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단순미를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인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추상적으로 보이는 화면 속 사물들은 사진 속 공간 안에서 일상성을 벗고 자체의 생명력을 발산한다.


파고다 Pagodas, 1998 

이정진은 8년간의 뉴욕 생활을 뒤로하고 1996년 서울로 돌아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 제작된 「파고다」시리즈는 6개월에 걸쳐 한국에서 촬영한 다양한 석탑 사진 2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같은 이미지 두 장을 다른 각도에서 투영된 거울상처럼 위아래로 붙이고 탑 주변의 요소들을 남김없이 지운다. 역사적 오브제는 텅 빈 배경으로 인해 본래 속했던 맥락에서 독립되어 조형적 오브제로 변화하고, 작품이 자아내는 시간을 초월한 듯한 고요한 분위기는 깨달음에 관련된 파고다의 종교적 상징성과도 일맥상통한다.


바다 Ocean, 1999 

작가는 「바다」시리즈를 통해 추상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사진을 제작하였다. 작가는 한 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풍경이 아닌 바다 그 자체가 갖는 물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사진에 담아냈다. 「바다」연작은 현실 재현과 기록으로서의 사진의 기능을 부정하고, 사진속의 대상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아가 초현실적인 대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사막 American Desert, 1990~95 

이정진은 1990년대 초, 광활한 미대륙을 여행하며 마주한 원초적인 자연 풍경을 주제로 총 4개의 연작을 제작하였다. 사막, 바위, 덤불, 선인장 등 자연이 만들어낸 기이한 현상들과 비현실적인 공간에 감응하는 내면의 울림을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장엄하고 숭고한 자연 풍경을 그대로 포착하기보다는 사막이라는 장소에서 발견되는 물리적인 특징과 형상들을 극적으로 확대하거나 제거해버리기도 하면서 사막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인상을 표현하였다. 작가의 이 같은 이미지에 대해 이정진의 스승이기도 한 거장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미국의 사막」 연작에 부치는 짧은 노트「자연에 대한 두려움」에서 "인간이라는 야수가 배제된 풍경"이라고 표현하며, "작가는 냉철한 눈으로 그곳에 존재하는 고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본다."라고 묘사한 바 있다.


무제 Untitled, 1997~99 

「무제」연작은 작가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작업한 작품들로, 해변에 놓여 있는 나무 기둥, 바다와 부두, 물 한 가운데 떠 있는 섬 등 자연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모든 이미지를 세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한 화면 안에 담아냄으로써 이미지를 추상화하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에서 마주하는 이미지들은 고요하지만 동시에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섬세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바람 Wind, 2004~07 

「바람」시리즈는 작가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미국의 뉴멕시코 사막과 한국의 각지를 여행하며 포착한 풍경을 담고 있다. 작가는 숲이나 들판, 혹은 사람의 흔적이 남은 마을에서 그의 감정과 상상력을 흔들어 놓는 장면을 만나게 될 때 셔터를 누른다고 말한다.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형학적이거나 사실적인 속성이 아닌, 풍경 속에 투영된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는 사색과 내면의 표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홀|7월 1일까지|(입장 마감 17:00/ 토요일 2시간 연장 전시)www.mmc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