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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아트리움]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by *아트래블 2018.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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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전시정보]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에는 그 시대에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클림트 인사이드>는 1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남긴 명작들과 그의 삶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전시다. 풍부한 황금빛으로 관능과 극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클림트의 작품세계를 4M의 스크린, Full HD 미디어 프로젝션 빛과 감각적 사운드, 다양한 오브제 설치로 선보인다.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 전시기간 2018. 05. 23 (수) - 10. 28 (일)

✔️ 관람시간 10:00 - 20:00 (입장마감 19:00) / 매주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호반아트리움 아트홀 (광명역) , 스페셜 존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봐라'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빈의 남서부 교외 바움가르텐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추상미술의 대가로 알려진 피카소가 어린 시절에 이미 사실적인 화풍을 마스터 했듯이, 클림트 역시 귀금속 세공업자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일찍부터 전도유망한 화가로 주목받았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은 어려웠지만, 1876년, 14세의 나이로 오늘날 직업학교와 유사한 공립 공예미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879년, 클림트는 학교에서 만난 동급생 프란츠 마치, 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라는 예술 사업단을 만들고, 신시가지 조성사업의 중심이던 링슈트라세 건축에 주요 장식 작업을 맡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통 회화 양식을 충실하게 따른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등을 제작했고 그 성과로 황제의 국가 훈장까지 받게 됩니다.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 죽음과 삶 Life and Death, 1908-1916


유명한 스타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클림트는 1892년, 아버지와 동생 에른스트를 병으로 잃게 되고, 성공가도를 달리던 예술가 컴퍼니도 해체됩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클림트의 작품 세계는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됩니다.


30세 이후부터, 클림트는 빈에서 가장 대담하고 개혁적인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대중들의 사랑, 명예와 경제적 안정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이후, 클림트의 작품은 끊임없이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왔습니다.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 신부, The Bride (unfinished), 1918


그 과정에서 클림트는 때로 좌절하고 분노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정열적으로 그림에만 몰두했습니다.


섬세하며 몽환적인 그림의 이미지와 달리, 정작 화가 자신은 에너지 넘치는 크고 단단한 신체의 소유자였으며, 혁명적인 도전을 거듭하며 전위적인 예술가로서 열정 넘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 Gustav Klimt and Emilie Floge


클림트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관능적인 격렬함을 표현하는데 탁월했습니다. 또한 평생 여성을 그리며 탐구했지만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실에는 늘 아름다운 모델들이 있었고 그가 죽은 뒤 친자 확인 소송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죽은 동생의 처제였던 에밀리 플뢰게와는 평생 가까이 지냈는데, 육체적인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클림트의 작품은 19세기 말을 대표하지도 않으며 20세기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역사주의와 상징주의, 그리고 자연주의, 표현주의, 추상이 뒤섞여 그 어떤 범주에도 집어넣기가 어렵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처럼 클림트 자신 또한 모순적이고 복잡한 시대를 치열하게 관통한 예술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