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운흥사종 반출경위 조사
2017년 사업 성과 내용
· 대표: 영담스님(고산문화재단 이사장)
· 집행위원장: 성조스님(운흥사 주지)
· 운영위원회: 정인 스님(승가대학 교수), 신정아(고산문화재단 총괄본부장), 김창균(동국대 교수), 문명대(동국대 교수)
운흥사 범종에 대한 국내 소장 시기 및 당시 보관 및 보존 상태 파악을 위하여 일제강점기인 1915년∼1935년 동안 약탈을 위한 기초자료로서 궁궐 및 전국 조사를 통해 ‘조선총독부’가 간행한『조선고적도보 (朝鮮古蹟圖譜)』 의 정밀조사를 실시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운흥사 및 운흥사 범종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이는 곧 운흥사 범종의 경우,『조선고적도보』가 간행되기 이전 반출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또한 일인 학자 쓰보이 료헤이(坪井良平)가 우리 범종을 망라하여 조사해 놓은 『조선종(朝鮮鐘)』 東京 : 角川書店, 昭和49 (1974)〕에서도 면밀히 살펴보았으나 운흥사 범종에 대한 내용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운흥사 범종에 대한 보다 정밀한 조사(사진촬영)와 소장 경위에 대한 내용 파악, 그리고 협의를 통한 운흥사 범종의 국내 대여전시 등을 논의하기 위하여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학예부장은 독일 출장 중이라고 계속 미팅을 미루었고, 면담 당일 관장은 계속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이에 범종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수집을 위해 촬영을 시작했으나, 미술관측에서 여러 사람이 내려와서 촬영을 제지하고, 심지어 범종 가까이 가는 것조차 허락 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촬영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카메라에 담을 수 밖에 없었다.
네즈미술관에 소장된 전시작품들 중 우리 문화재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설치가 되지 않은 관계로 더 확인이 불가능했다.
네즈미술관 지하1층 계단구석에 설치된 운흥사 범종
고성 운흥사 사찰배치 및 불교문화재 소장 현황 파악을 위한 현지 방문.
본래 소장처인 운흥사 주지스님 면담을 통한 운흥사 범종 반출경위 여부와 사찰 전래 관련문서 유무를 확인하고자 운흥사를 직접 방문.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사찰 측에서도 언제 반출되었는지에 대한 사실 인지가 불확실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중창 이후) 사찰의 규모 및 당시부터의 불교문화재 보유 현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본래 사역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 하에 현재의 사찰로 복원·유지되고 있었으며, 범종루도 새로 건립하여 2014년 신 종을 주성하여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행히 영산회괘불도 및 감로왕도, 아미타후불도 및 약사후불도, 목조삼세불좌상 등이 유전하여 봉안·예배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단, 수월관음보살도는 본사인 하동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기탁 보관 중이었다.
5. 2017년 8월~9월 : 운흥사 범종 명문분석 및 양식 파악
2017년 6월 30일∼7월 2일(2박 3일) 네즈미술관 방문 시 촬영하였던 사진자료를 통한 명문판독·분석 및 운흥사 범종의 양식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주종장 ‘김애립’의 경우 전라도 및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김용암’ ‘김상립’등과 함께 활약하였던 당시의 대표적 사장계 주성장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범종의 양식 특징은 종구가 벌어진 사다리꼴 몸체에 쌍용뉴를 하여 중국종의 전형을 다르고 있음이 파악되었으며, 세부적인 특징의 경우 여수 흥국사 범종(1665년)과 고흥 능가사 범종(1698년)의 양식 특징과 상통함을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세 범종의 주종장이 ‘김애립’ 동일한데 있었다.
두 범종이 모두 국가문화재 보물 제1556호와 제1557호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양식특징으로 보아서나 조성시기로 보아서도 국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 네즈미술관 (根津美術館, Nezu Museam)과 운흥사 범종: 네즈미술관 소장의 우리 문화재로는 「아미타구존불래영도」를 비롯하여 「아미타 삼존불도」2점, 「아미타독존불도」 , 「석가삼존16나한도」 , 「지장보살도」 등 고려불화 6점과 고려시대 석조승탑 1기, 「운흥사 범종」을 소장하고 있다.
1. 일본은 1937년의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1941-1945)이라는 전쟁의 확산과 함께 일본은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해 식량 배급은 물론 공출제도를 실시 농촌의 농기구나 식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교회 사용의 집기와 더불어 종 이나 사찰의 의식구 및 범종까지도 징발
아마도 이러한 징발령과 함께 운흥사 범종 또한 공출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나 범종의 빼어난 자태로 말미암은 예술적 가치 및 봉안사찰 및 주종 내력을 알 수 있는 명문이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를 알아채고 일본으로 반출한 것으로 사료됨.
2. 조선총독부가 후원하고 일본 귀족들 미술 단체가 주관하여 1934년부터 1941년 까지 8년 동안 오사카와 도쿄 등에서 7차례 열린 조선 문화재 장터인‘조선공예 전람회’를 열어, 한 차례 당 1,500~3,500점의 우리 문화재가 거래된 사실을 비추어볼 때 계획적이고도 조직적인 문화재의 반출이 짐작됨.
3. 미술관의 실질적인 주인인 네즈 가이치로는 “철도왕”으로 남조선철도의 이사로 취임한 바 있으며 1926년 조선총독부에 순천을 기점으로 철도 부설 계획을 출원하였다. ‘남조선철도’라는 명칭의 노선은 광주-여수 간 75마일, 순 천-영산포 간 86마일 등 모두 160마일로 전라도 및 경상도의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반출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으 리라 짐작된다.
바다와 가깝고 여수, 순천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운흥사야 말로 규모가 크고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찰로서 약탈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며, 공출령을 빙자한 범종의 일본 반출 역시 네즈 가이치로의 ‘남조선철도’를 통해 밀반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원문 -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운흥사종 반출경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