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11월 대설주의보(大雪注意報)

2018. 11. 24. 09:00go artravel/no scribbling

첫눈, 그래 첫눈이다.


그것도 11월에 함박눈, 참 오랜만의 기억인 듯 싶다.

기억에도 작년보다 7일이 늦고 평년보다 3일정도 늦은 첫눈.


보통은 눈이라고 하기도 뭐한 눈이 날리는 정도라 적설량이 없었는데, 

오늘은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일터로 가는 이들에겐 조금은 고된,

야외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적잖은 불편한 하루겠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이나마 내리는 올 해 첫눈에 마음 한켠 내어주는 건 어떨까.


*


해마다 눈이 내리면, 오늘처럼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시,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大雪注意報)'




대설주의보(大雪注意報)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어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