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인 콜렉티브, '이정민 · 진시우 부부' 그들을 추모하며
지난해 1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8 최종 후보에도 오를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았던 '옥인 콜렉티브' 를 이끌던 이정민 · 진시우 부부의 슬픈 소식을 접하며, 미술관 전시를 통해서나 마주했고 겨우 그들의 이름을 어찌어찌해서 알던 정도의 관계인 일면식 없던 작가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예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라는 조금은 멋드러진 질문에 대한 다소 퉁명스러운 답을..
좀 엉뚱하기도, 그리고 너무나 현실적인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경제력의 확보가 최우선이 아닐까 싶다. 굳이 현학적인 표현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있어보이는 입맛에 맞는 멋드러진 답안들을 끄적일 순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에게나 첫걸음의 의미가 남다르고 중요한 결정이 되는 것처럼, 화가들에게 있어서 역시나 첫 발을 잘 내딛어야 한다는 자조적인 표현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이나 설치미술 분야는 최상위 작가가 아닌 이상은 요즘은 생계유지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그림들이 팔리는 아트 페어를 보면서 본래의 전공 분야를 유지하고 싶어도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꽤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진로를 선회하는 작가들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도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어 지방으로 대학 강사 생활을 하고, 또 짬짬이 다른 부업거리를 찾아다니며 이쪽 저쪽 고개를 기웃거리느라 정작 작업은 뒷전이 되고하는 불안한 현실과 미래를 토로하는 작가들의 슬픈 모습을 보는 일은 미술 분야에서 한발자욱 떨어져 지켜보는 내게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들의 마지막 편지에 적힌 글이 자꾸만 생각나는 8월 어느 여름 아침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8에 올라온 옥인 콜렉티브의 전시내용을 다시 한번 보고자 한다.
옥인 콜렉티브: 우리는 왜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옥인 콜렉티브(김화용, 이정민, 진시우 / 2009년 결성)는 종로구 옥인 아파트의 철거를 계기로 형성된 작가 그룹이다.
작가 이정민, 김화용, 진시우로 구성된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의 시작은 2009년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던 옥인아파트 2동 옥상에서 진행된 1박2일 공공예술 프로그램 ‘옥인아파트 프로젝트’(2009)다.
반쯤 폐허가 된 아파트 내부를 돌아다니며 남겨진 물건더미에서 떠난 이들의 흔적을 찾고, 미처 이주하지 못한 소수의 주민과 함께한 만찬·담소·전시 등의 여러 작업을 촘촘히 엮어 도시생태계의 변화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업은 각자 활동하던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당시 작가들은 개발 논리와 삶의 연속성이 충돌하는 철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부러 옥인아파트를 찾아간 게 아니었다. 그곳에 살던 동료 김화용의 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가들 역시 도시, 재개발, 아파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주민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미래를 함께 풀어나가자고 의기투합했다.
2010년 4월 아파트 명을 팀 이름으로 정한 후 본격적으로 돛을 올린 옥인콜렉티브는 버려진 공간을 미술언어로 소환해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개발로 묻혀버린 이웃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옥인아파트 프로젝트’를 1년여 동안 진행했다.
보금자리를 뺏긴 채 기억만을 품게 된 주민들과 대화를 지속하면서 사회현장과 예술을 접목해온 그동안의 프로젝트들을 정리한 개방형 전시 ‘옥인 오픈 사이트’(2010)도 기획했다. 이 밖에 벽화 그리기, 언플러그드 공연을 통해 개개인의 사적 가치를 공동체적 사용가치로 전치시키는 작업들을 병행했다.
그러는 사이 옥인아파트 철거가 확정됐고 옥인콜렉티브도 이 아파트를 떠나 한남동의 한 전시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콘크리트 아일랜드’(2010)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 작업은 정해진 유통구조 아래 매겨지는 미술의 값과 미술의 가치가 제도 바깥의 다양한 관계 맺기와 교환방식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실험한 전시다.
‘콘크리트 아일랜드’를 전후해 옥인콜렉티브의 작업은 생활인과 예술인의 경계에 서 있는 자신들의 관심사를 넘어 사회적 문제를 미술이 어떻게 매개할 수 있는지 등으로 확장됐다.
특정 시간·장소·조건에 동의한 사람들이 작가들과 함께 전시장에 설치한 피켓 모양의 붉은색 오브제로 눈을 치우는 퍼포먼스 ‘작전명-하얗고 차가운 것을 위하여’(2010)를 비롯,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할 때에 대비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기체조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2011), 8년째 투쟁 중인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다큐멘터리 연극 <구일(九日)만 햄릿>의 거울 버전인 ‘서울 데카당스-Live’(2014) 등이 대표적이다.
옥인콜렉티브 작업의 특징은 자칫 경직될 수 있는 무거운 사회적 이슈를 다루지만 자유로운 태도와 개념 아래 그들만의 발랄하고 경계 없는 방식으로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데 있다. 홈페이지와 팟캐스트를 결합한 인터넷 라디오 스테이션 ‘스튜디오+82’처럼 사회와 예술의 상관성을 더 넓은 맥락에서 가시화하려는 시도도 그들만의 특색이다.
특히 미술과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의 트위터 계정인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하고 멘션을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받은 박정근 사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거나 교육·노동·성·장애·지역 등과 같이 예민한 사회문제에 개입해 미적으로 재구성하는 등 옥인콜렉티브가 지향해온 모든 작업이 그 고민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속에서 단순화된 관계와 상황에 내포된 양가적이고 중층적인 사람들의 감정, 태도, 상황을 노출시켜, 근대 도시에서 공동체와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개인과 개인 간에 존재하는 갈등과 화해, 연대의 의미와 한계를 모두 다룬다.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 실천을 해온 옥인 콜렉티브는 이번 전시에서 지금까지의 작업 기록과 과정에서 파생된 언어들을 비선형적으로 추출하여 재배치한 <랜덤 아카이브>와 서울, 제주, 인천 세 도시에서 각각 하나의 공동체를 찾아, 도시 속에서 우리가 왜 공동체를 형성하는지, 구성원과 공동체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공동체가 유지되어 가는지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작한 신작을 발표한다.
<회전을 찾아서, 또는 그 반대>의 경우, 인천에 위치한 예술가 공동체인 ‘회전 예술’의 이야기를, <황금의 집>에서는 제주에 위치한 음악다방 까사돌을 찾는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추적한다. 옥인 콜렉티브는 흑백, 호불호, 찬반 등으로 나뉠 수 없는 상황들의 복잡성과 관계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세심하게 짚어낸다.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
미술 작가 그룹 ‘옥인 콜렉티브’의 이정민(48)‧진시우(44) 부부가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들은 숨지기 전 옥인콜렉티브 활동으로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담긴 편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미술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이정민‧진시우 작가가 숨졌다. 옥인콜렉티브는 2009년 서울 종로구 옥인시범아파트 철거를 계기로 형성된 작가그룹이다. 1971년 인왕산 자락에 들어선 옥인아파트에 살던 김화용 작가의 집을 방문한 여러 작가가 버려진 공간과 남은 주민의 삶을 엮은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듬해 4월 김 작가와 이정민‧진시우 작가가 주축이 돼 옥인콜렉티브가 출범했다. 이들은 도시재개발, 부당해고, 위험사회 등의 문제를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풀어냈으며 인터넷 라디오 방송, 공연, 오프닝 등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관객들과 소통했다.
지난해 1월 국립현대미술과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았지만 내부적인 문제로 지난해 말부터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미술계 안팎에선 옥인콜렉티브가 제작하는 작품은 특성상 판매 수익이 크지 않아 평소 생활고를 겪어 왔던 두 사람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있다.
이정민 진시우 작가는 숨지기 전 함께 활동한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담은 예약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인연을 맺은 박재용 큐레이터가 이 이메일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공개된 메일에 따르면 두 작가는 “심신이 많이 지쳐 있지만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기 위해 힘을 낸다”며 “2019년도 12일부터 불거진 옥인 내부 문제를 전해 들은 분들에게 의도치 않은 고통을 나눠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두 작가는 이어 “옥인의 전체 운영을 맡아온 저희(이정민‧정시우) 방식이 큰 죄가 된다면 이렇게나마 책임을 지고자 한다”며 “더 이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저의 잘못이고 온 힘을 다해 작업을 해왔던 진심을 소명하기에 지금은 허망함뿐”이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바보 같겠지만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한 두 작가는 “10년 가까이 옥인 활동으로 함께했던 모든 예술 관계자 여러분들께서 주신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에 늦은 감사의 말씀을 남긴다”고 했다. 두 사람의 빈소는 따려 마련되지 않았으며 발인은 20일 낮 12시, 장지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 추모공원에 마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