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은 매년 작가공모를 실시하여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드로잉 전시를 지속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은 물론 최종 선정된 작가들의 전시회를 "Into Drawing" 이란 이름으로 개최한다.
올해 역시 2017년도 드로잉센터 작가공모에 선정된 작가 3인의 개인전으로 진행되는데, 그 중 첫 번째 전시로 6월 8일부터 6월 24일까지 개최되는 "Into Drawing 36" 은 "점점 느리게 그리고 여리게, 점점 사라지듯이 (Perdendosi)" 라는 부제로 이요나의 일상의 오브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음악적 단상에 미술적 장치를 덧붙여 공간에의 공감각적 경험을 유도하는 설치작업을 전시하는데,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들이 걸려있는 모습은 마치 음표가 오선에 걸려 음악이 되는 모습처럼 그 자체적으로 미술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며, 또 일상의 것들과 미술이라는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에서 진열되는 모든 오브제들은 미술관이라는 캔버스에 3차원적으로 드로잉 되는 미술품이라는 개념을 되돌아보고자 하는데 소마미술관 메인 전시(일부러 불편하게)와 함께 관람 가능하다.
▶ 공간의 해석과 변주
이요나의 드로잉 작업은 음악적 단상에 미술적 장치를 덧붙여 공간에의 공감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우선 드로잉에 대한 작가의 질문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있다. ‘우리가 드로잉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3·4차원적인 드로잉은 전통적인 드로잉 관념에 어떻게 도전할 수 있을까?, 드로잉의 과정을 통해 공간, 시간 그리고 기억들을 한 곳에 가져다 올 수 있을까?’(작가노트 중) 특히 세 번째 질문은 그의 드로잉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데, 작가는 일상적 공간들을 그가 가진 예술적 언어로 재해석하여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일상의 기억과 감각들을 소환한다. 이때, 그의 예술적 언어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음악과 오브제인데, 음악으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예술적 언어는 자연스럽게 선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며 선적인 오브제로 치환(置換)된다.
선적인 오브제들은 공간을 가로지르고 공간에 놓이고 움직이면서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선을 통한 음악적 표현은 선적 이미지들이 작가의 의도에 맞춰 밀도, 크기, 수량을 달리하여 공간 속에 놓이면서 상호관계 속에 발생하는 리듬, 선율, 소음, 침묵의 메시지이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매끄럽고 강한 선을 주로 사용하면서 이와는 대조되는 아주 연약한 재질의 선, 유연하고 탄력적인 선 등을 병치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이요나의 공간 드로잉은 바이올린 솔로의 선율(旋律)처럼 외롭다가 오케스트라처럼 왁자지껄하다가 단조로 읊조리다가 장조로 쨍쨍거린다. 첼리스트를 꿈꿨지만 현재 미술가의 길을 걷고 있고, 한국인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작업 속에 양가적인 요소로 발현되는 듯하다. 요컨대, 그의 작업에 보이는 선들의 강약, 조밀함과 여백, 파격과 단조로움 등은 공간을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요소이며,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매재(媒材)가 된다.
한편, 작가는 상품의 진열에 사용되는 장치와 형식을 빌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미술관 공간으로 가져와 오브제화 한다. 일상의 오브제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 이후로 너무 흔한 현대미술의 언어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일상에서 쉽게 소비되는 것들 가운데 작가라는 체에 걸러져 미술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편입된다는 것이, 사회에서 무수히 교차되는 개인적 욕망의 단면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설정이기 때문은 아닐까. 공간에 놓인 오브제들은 기호와도 같고, 공간 안에 진열된 다양한 선들 사이로 진입한 관람자는 좋든 싫든 그 공간을 공유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관람자의 시선, 발자취, 숨소리, 목소리, 몸짓이 말이다. 때론 작가의 퍼포먼스가 더해져 공간은 더욱 적극적인 소통의 장소가 된다. 이렇듯 미술품과 상품, 미술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진 그 지점에서 작가적 상상력은 유쾌하게 관람자의 감수성을 울릴 것이다.
소마드로잉센터의 전시공간을 작가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한 면이 유리창으로 확 트여 그 너머로 올림픽조각공원의 장관이 고스란히 담기는 개방적이고 아름다우며 역사적인 이 공간을 말이다. 약간의 실마리를 풀자면, 작가는 이곳에 ‘화장실과 카페’라는 공간을 소환하여 공원이 주는 여유로움을 담아냄과 동시에 우리가 미술관에 가지는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장소특정적 작업의 특성상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에 비추어 짐작할 뿐 아직 그 전모를 알 수 없지만, 드로잉의 확장된 실험을 위한 이 특별한 공간에서 펼쳐질 너무도 드로잉적인 이요나의 작업이 무척 기대된다.
▶ 드로잉 단상
드로잉의 개념을 확장한다면 그 해석이 무한대로 가능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보면 사상의 상징성과 정서적인 표현방식에 있고 그 중심점에 존재한다. 문자적 언어 표현, 다양한 기호와 도표에서 몸짓, 행동 그리고 표정까지 일상에서부터 예술 그리고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드로잉은 실존한다.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시각적인 영역에서의 드로잉은 단면적으로 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선이라는 것은 시각적인 영역에서 벗어날 때 그 안에 잠재하는 다방면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음운적 영역에서의 선은 일시적이며 음악이라는 매개체에 속해있을 땐 더욱 감성과 직속 연결이 된다. 더 나아가 음운적 영역에서의 선은 시공간과 색다른 관계를 맺게 되는데 시간의 중력에 노출되는 반면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시간의 중력에 맞서기 위해 어떠한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이 곧 선이고 선이 곧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좋은 힘과 나쁜 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좋은 힘은 적절하면서도 자유롭고 나쁜 힘은 일방적이고 억압되어 있다. 나쁜 힘은 지나치게 몰입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난히 압도되는 소리들이 있는데, 그 소리는 대부분 여성성과 남성성이 균형 있게 잡혀있고 특정 매개체와 자유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힘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갈 때 항상 필요로 하는데 육체적 힘과 정신적 힘 모두 포함해 일상에서 그리는 선은 그 무대와 관객이 모호하다. 똑같은 원천의 힘이지만 예술이라는 영역, 그 테두리가 주는 무대에서의 선은 관객들로 하여금 주의하게 한다. 마치 제약처럼 보이는 이 경계선은 선이 내포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극대화 한다.
이탈리아어인 Perdendosi 는 클래식 음악 용어로 ‘점점 느리게 그리고 여리게, 점점 사라지듯이’ 연주하라는 제시어다. 나의 선들은 시각적인 영역보다 음운적 영역에 속해있으며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이 자유로움은 공간이라는 제약을 무시한다기 보다 그 안에서 규칙을 찾고 따르며 공간의 특성을 명확히 함으로서 찾는 것이다. 일상적 언어와 추상적 언어가 동시에 공존하는데, 바쁜 일상 속 점점 느리게 그리고 여리게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존재를 매 순간 나타내기 애쓰기보다 내가 점점 사라지듯이 다른 사람과 주변을 살핀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전 시 명 : Into Drawing 36 _점점 느리게 그리고 여리게, 점점 사라지듯이 (Perdendosi)
전시기간 : 2018. 6. 8(금) ~ 6. 24(일)
전시오픈 : 2018. 6. 7(목) 오후 5시
관람시간 : 10:00 - 18:00 ※ 17시 20분까지 입장 가능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입 장 료 : 메인 전시(일부러 불편하게) 관람 시 무료 관람 (성인 : 3,000원 / 청소년 2,000원 / 어린이 1,000원)
전시장소 : 소마드로잉센터 전시실(제6전시실)
전시작가 : 이요나 Yona Lee
출 품 작 : 오브제 설치
홈페이지 : soma.ksp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