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음ㅣ내게는 미슐랭, 그 이상의 맛
온지음
일상에서 마주하는 밥그릇
숟가락 하나,
건내는 말 한마디에
담겨진 정성 하나하나가 보이는 곳
'맛집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맛은 50프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말에 많이 공감한다.
설사 미슐랭이든 뭐든 간에 '맛집' 이라함은 그저 '맛' 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직원들의 서비스,
식당 인테리어 그리고 식당 내 모든 물품들,
거기에 밥을 먹는 동안 오롯이 공간을 채워주는 음악까지
식당을 둘러싼 유무형의 많은 것들이 음식의 맛을 느끼는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굳게 믿고있다.
* 2021년 9월 방문글
고즈넉한 경복궁 서쪽의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영추문迎秋門' 을 지나면 온지음에 다다른다.
예전 한식 관련 정보를 구글링하다 온지음에 대한 글을 본 적은 있지만,
이 곳에 대한 궁금함은 지인으로부터 이곳에서 하는 반찬 배달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 였다.
미슐랭 식당(원스타)인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밖에서는 이 곳이 식당인가 싶은, 모양새부터가 전문적인 식당이라 말하긴 어려운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전통 음식을 비롯해 의, 식, 주 또한 같이 연구하는 전통문화연구소에 가까운 곳으로 기존엔 원테이블 운영의 단체 예약만 받던 곳이었다고 한다.
가본 사람들에게서는 자그마치 ‘한식의 끝’ 이라고 평가받던 곳이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기대감을 안고 방문했다.
5만원의 예약금(1인당 금액) 을 지불해야만 예약이 이루어진다.
*현재는 케치테이블 예약 가능, 물론 하늘의 별따기.
21년 9월 기준, 이때만해도 전화예약만 되었는데, 지금은 카카오톡으로 5주전부터 예약이 가능하다. (우스갯 소리지만 예약의 불편함때문에 2022년 미슐랭 1스타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주방앞에 위치한 바(Bar) 자리는 여유가 있어보였다.
일반적인 한식당과 달리 바(Bar) 자리의 경우 주방과 거의 붙어있다 시피해서 가까이에서 조리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셰프나 홀직원들과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배치된 바 테이블은 편하게 음식을 즐기기에는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질 듯 싶었다.
꼭! 이 아니라면 원하는 일자에 테이블로 예약을 하는 것이 온지음에서 오롯이 음식을 즐기기에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단, 테이블 좌석의 경우 최소 한달전에 예약을 해야만 될만큼 경쟁률도 높고, 좌석수도 많지 않고 이 곳에서 식사를 원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으면 좋을 듯 싶다. (물론 현재는 5주전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다, 역시나 치열한 경쟁률은 기본)
좋은 공간에 놓인 것들은
나의 미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듯 싶다.
한지에 깔끔하게 인쇄되어진 온지음 메뉴지,
이마저도 멋스럽다.
메뉴지에는 순두부, 게살 잣수란, 진주식 갈비찜, 백화반, 쌍화면 등 총 5개의 메뉴가 적혀 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그래도 10만원에 달하는 런치코스인데
메뉴가 겨우 5개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에
이 곳이 좋은 공간이며,
멋스럽게만 보였던 메뉴판 따위는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
내색하진 않았지만 사실 조금은 빈정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이 철저하게 나의 오판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온지음의 시작, 아뮈즈부슈
메뉴에 있는 음식들이 선보이기 전 아뮈즈부슈(amuse-bouche) 격의 작은 요리들이 먼저 나왔다.
이 역시 메뉴판에는 없던... 시작부터 풍성한 메뉴에 메뉴가 빈약하다고 타박했던 것에 미안함 한가득이다..
식당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역할을 맡고있으며,
애피타이저보다도 앞서 나와 식욕을 돋우어주는 역할을 하는 아뮈즈부슈(amuse-bouche).
총 여섯 개의 음식이 따로 또 같이 놓인 모습에는 맛도 그리고 정갈함도 담겨있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온지음의 음식 하나하나는 그 모양새, 섬세한 마무리 등이 마치 아뮈즈부슈(amuse-bouche)를 닮은 듯 싶었다.
따로 놓여진 옥잠화를 제외한 어란 부각, 송편, 새우포, 참다래, 장땡은 보기에도 또한 먹기에도 좋을 만큼의 크기였다.
고소하고 바삭거림 모두를 만족시킨 온지음의 '어란 부각'. 입에 넣는 순간, 테이블에 마실 샴페인이 있음에도 외려 맥주 한잔 생각 간절해지게 하는 메뉴였다.
강원도식 모양새를 한 '송편'.
온지음을 간 9월은 추석이 있는 달이라 송편을 준비했다고 한다. 모양새에서 어느정도 알 수 있듯 쑥과 단호박으로 만들었으며 콩고물이 들어있는 송편이다.
그리고 새우를 말려 만들었다는 '새우포' 와 한국식 키위인 '참다래'
거기에 '장땡'.
육포를 연상케하는 모습의 장땡은 햇된장을 거르는 시기에 된장에다 고추장과 돼지고기, 소고기를 조금씩 넣어 한번 쪄서 말린 다음에 구워서 장기 보관이 가능하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짭조름한 맛이 육포와는 다른듯 닮은 맛을 보인다. 함께 나온 따뜻한 차랑 마시면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이걸 어찌 먹을까..
.. 하는 생각부터 들게한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옥잠화 볶음'
향기가 일품인 옥잠화는 항암작용이 있는 식용 꽃으로 예전 반가 요리에 사용되었으며 보통 비빔밥이나 샐러드에 들어가는 식용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옥잠화 볶음'은 온지음에서 반가음식의 대가로부터 배워 만든 음식이라 한다.
부드럽게 말린 옥잠화 꽃잎에 볶은 소고기와 표고버섯, 채 썬 배를 채워 넣어 만든 꽃쌈 옥잠화는 꽃잎의 부드러운 식감과 향긋한 꽃 내음 속 적절한 간이 배인 소고기버섯볶음과 달콤한 배 조각이 잘 어우러졌다.
모습에 한번 반하고 맛과 향에 취하는 옥잠화 볶음은 시각, 후각, 미각 모두를 만족시키는 음식이었다.
* 온지음 아뮈즈부슈(amuse-bouche)를 먹는 순서는 옥잠화로 시작해서 어란, 송편, 새우포, 참다래, 맨 마지막에 장땡을 먹는다.
첫번째 메뉴, 순두부
에피타이저 격으로 나온 순두부,
맑은 맛과 은은한 느낌을 주던 음식이었다.
별 것 아닌거 같은 그냥 순두부 요리인거 같지만
이 곳에서 먹는 음식은 기대, 감탄 그 자체였다.
소스가 이렇게나 맛있을 수가 있구나
두번째 메뉴, 수란채
예전 반가에서는 귀한 손님이 올 때 마다 수란을 준비해서 대접을 했다고 하는데,
수란채는 이를 응용해 만든 온지음의 냉채 메뉴이다.
개인적으론 온지음의 시그니처 메뉴가 아닐까하는 생각 들 만큼
수란채에 들어가는 잣소스를 맛보고 나면
왜 이 음식이 혹은 이 소스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온지음에서 자주 선보이는지를 알수 있을 만큼의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다.
수란이 주는 담백함에 잣소스의 고소하고 새콤달콤함까지 한데 어우러지는 뛰어난 맛의 밸런스가 돋보인 메뉴였다.
배, 아스파라거스, 오이채, 위로는 전복 게살, 제철인 무화과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게살 잣수란' 을 먹는 법은 소스를 먼저 먹어보고, 그 다음으로 수란을 깨서 한데 섞어먹으면 된다.
* 같은 해 겨울에 다시 방문했을 때에도 이 수란채가 메뉴에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세번째 메뉴, 섭산삼 그리고 빙자병
오른쪽에 있는 '섭산삼'은 두드릴 '섭'에 산삼 '삼'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예전 더덕이 산삼만큼 귀하다 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섭산삼은 더덕을 얇게 펴서 겉면에 찹살 가루를 묻힌 상태로 살짝 튀긴 후 위에 소금만 살짝 올려 낸다고 한다.
섭산삼과 함께 나온 동그란 모양의 음식은 '빙자병'이라는 녹두전이다.
빙자병은 맨 아래 녹두를 깔고 그 안에 껍질 벗긴 팥으로 고물을 만들어서 속을 한번 채운 다음, 그 위에 다시 녹두로 껍질을 속을 채운 다음에 전으로 깔고 고물을 양쪽으로 부쳐내어 만든다고 한다.
보기에는 심플한 원형모양의 전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 설명만으로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빙자병을 먹을때는 조금 차갑게 해서 떡처럼 해서 먹었다고도 하는데
온지음의 빙자병은 녹두의 고소함과 팥의 단맛의 조화로움이 인상적이었다.
* 먹는 순서는 섭산삼을 먼저 먹고 녹두전은 나중
히든 메뉴,
기대치 않던 즐거움을 마주하고
뭔가 숨겨둔 재미를 찾게끔 하는 시크릿메뉴
네번째 메뉴, 온지음 초밥
메뉴판에는 없는 히든 메뉴라며 나온 '온지음 초밥'.
사진의 좌측부터 참다랑어, 고등어, 잿방어, 기름 나물, 전어무침, 두부장 등이 놓여져 있다.
모양새는 비슷할 지 모르지만 온지음에서는 일식초밥과 조금 다른 형태로 특이하게 생선 위쪽에 흑초 위주의 간장을 발라두었다고 한다.
세종류의 초밥 위에는 오이랑 같이 산초기름에 섞어 놓은 전어가 있고, 그 옆으로는 진한 갈색의 된장이 놓여져 있는데, 이는 두부를 된장에 묵혀둔 후 장으로 만들었다는 '두부장' 으로 전어를 찍어 먹거나 섞어서 비벼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된다고 한다.
히든 메뉴는 음식을 즐기는 맛과 기분을 보다 유쾌하게 하는 온지음만의 재밋거리인지도 모르겠다.
다랑어는 접시 윗부분에 놓은 기름나물과 고추장 무침과 함께 먹으면 된다.
잿방어, 고등어, 참다랑어 순서대로 먹으면 된다.
먹는 순간,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나던 갈비찜
다섯번째 메뉴, 진주식 갈비찜
경남 진주의 반가에 전해 내려오는 이 갈비찜은 경남 진주 반가인 허씨댁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갈비찜은 우리가 흔히 아는 갈비찜과는 달라보였다.
아다시피 보통의 갈비찜은 덩어리로 나오는데, 진주식 갈비찜은 이가 성하지 않은 부모님을 위해 만든 '효'와 ‘배려’의 음식으로 갈빗대 위에 곱게 채 썰어 양념한 생갈비를 볶고, 독특한 향의 능이버섯과 우엉 등을 넣어 찐 뒤 밤채와 대추채 등 고명을 얹어 어르신들이 먹기 좋게끔 부드럽게 만들어졌다.
버섯이 좋을 때라 송이버섯과 밤을 살짝 갈아서 함께 놓았다고 한다.
여섯번째 메뉴, 백화반 반상
색색의 나물과 고명을 얹는 비빔밥은 오방색이 어우러진 꽃밭 같다 해서 예부터 화반(花飯)이라 불렸는데, 온지음에서는 이 전통비빔밥을 청포묵, 도라지, 더덕, 무, 밤과 같은 하얀 재료만으로 고명을 올린 후 백화반이라 이름을 지었다 한다.
백화반은 여러 재료의 단맛이 잘 어우러진 음식으로 함께 명이나물, 연근, 토란 넣은 아욱 된장국이 나왔다.
백화반을 먹을 때는 나물만 비벼서 먼저 한번 맛을 보고, 그 다음에 올려 놓은 장을 조금씩 덜어가며 맛을 봐가며 먹으면 좋다고 한다.
양념장을 맛보기는 했지만 비벼먹지는 않았다.
양념장의 맛이 개인적으로 입맛에 맞지 않은 때문이기도 했지만, 각종 나물을 볶을 때 소금과 참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양념장 없이도 밥과 나물만 비벼도 간이 맞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좋았기 때문이다.
일곱번째 메뉴, 쌍화편
디저트로는 쌍화편이 나왔다.
'온전히 옛것을 짓다' 라는 뜻을 지닌 온지음과는 조금 결이 다른 현대적인 감각의 디저트였다.
위쪽에는 진한 쌍화차를 소스차를 올려놓았고 그 바로 아래는 계란 노른자, 우유와 잣을 한데 넣어 푸딩의 식감을 주었고, 맨 아래엔 대추로 만든 쨈까지 있어 판나코타의 느낌이 물씬 나는 디저트였다.
* 디저트 다음으로는 호박차, 진피차, 커피 등의 티(tea) 와 간식이 준비되어있다.
그렇게 마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의 오랜, 정성스러운 작품 해설을 듣고 나온 듯, 두시간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온지음과의 첫번째 만남의 시간이 마무리 되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 바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 에서 표현한 백제 궁궐 건축미에 대한 평인데, 이 문장을 전통문화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온지음.
그들이 추구하는 '전통' 을 지키는 일에 충실하며, 한식의 새로운 이미지를 쌓아가며 모름지기 멋스런 한식은 이래야 한다 라고 말하는 듯 싶었다.
미슐랭 식당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다녀온 '주옥' 보다 더 나은
아니, 한식에 관해선 이 정도면 감히 최고가 아닐까 생각들만큼의 모자람 없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래, 난 어쩌면 온지음을 추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온지음 위치: 서울 종로구 효자로 49 4층
▲온지음 영업시간: 점심 12:00 – 15:00, 저녁 18:00 – 22:00, 월요일, 주말 휴무
▲온지음 가격: 런치 14만원, 디너 22만원 / 주류페어링(별도) 런치 6만원, 디너 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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