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칼럼] 조은산 님을 찾습니다
조은산처럼 익명으로 숨어서
지난 대선 때 협작질했던 인간들의 민낯 좀 보고싶다.
윤석열 정권의 위기가 깊어졌다. 대통령의 11월 7일 ‘끝장 기자회견’은 도움은 되지 않고 새로운 조롱거리만 제공했다. 위기의 징후는 사방에 널렸다. 제일 확실한 게 무얼까? 대통령의 언행과 정책을 내놓고 옹호하는 논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라고 나는 본다.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보수 패널들은 대통령과 정부를 옹호하지 못한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비방하며 ‘양비론’을 펴는 게 그들의 유일한 전략이다.
윤석열을 비판하는 보수 논객이 하나둘이 아니다. 정규재 씨는 대선 전부터 그랬다. ‘보수의 거성’ 전원책 변호사는 요즘 들어 비판을 시작했다. 지난 대선 때 그는 나와 함께 KBS <정치합시다>에 고정 출연했다.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고, 선거 기간 내내 윤석열의 넉넉한 승리를 장담했다. 개표 생방송 도중 ‘윤석열 당선 확실’ 뉴스가 뜨자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며 기뻐했다. 민주당의 분열과 윤석열 주도 정계개편을 예측했다. 그랬던 그가 더는 윤석열을 편들지 않는다.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판할 뿐이다.
대통령은 외롭다. 지근거리에는 용산 대통령실의 ‘김건희 라인’ 아부꾼들뿐이다. 그래서인지 밤에 ‘술친구’를 관저로 부른다는 소문이 돈다. 윤석열은 박수부대를 배치해둔 행사장만 다닌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은 가지 않는다. 야당 의원들이 야유한다고 해서 국회까지 외면했다. 예산안 시정연설을 총리가 대신하게 했다. 똑같은 이유로 신문 방송 뉴스도 직접 보지 않고 대충 보고만 받는 듯하다. 내놓고 편들어주는 데가 KBS 하나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신문도 <한국경제>와 <매일신문> 빼고는 무조건 대통령을 옹호하는 데가 없는 것 같다. <조선> <중앙> <동아>조차 내놓고 대통령을 ‘디스’한다. 친윤 유튜브 채널은 위로가 되지만 영향력이 없다. <신의한수> <고성국TV> <배승희변호사> 등 대표적인 친윤 유튜브 방송은 최근 한동훈을 비난하는 데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구독자는 백만 명이 넘지만 생방송 실시간 구독자와 영상 조회 수는 빈약하다.
지난 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17퍼센트까지 내려갔다. 민주당 지지층은 원래 부정적이라고 하자. 문제는 중도층 또는 무당층인데, 여기서도 긍정 평가는 10퍼센트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국힘당 지지층조차 절반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불만을 표시했다. 여기서 더 내려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논객다운 논객’이 필요하다. 유능한 논객들이 나서야 유리한 정보와 설득력 있는 논리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포섭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논객이 보이지 않는다. 친윤 유튜버들은 여전히 활발하지만 목적이 무엇인지 미심쩍다. 새로운 지지자를 확보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지지층을 선동해 수익을 창출하는 데 몰두하는 것 아닌지 의심할 만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가 치열하게 논쟁하고 토론하고 경쟁하고 때로는 타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 논객의 실종은 윤석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보수 논객의 분발을 촉구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스타 논객’들의 전선 복귀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들은 윤석열 정권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대통령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봉착했는데 뭐하고 있는가. 몸을 아끼지 말고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사라진 보수 논객들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진인’ 조은산
누가 있냐고? 많다. 2019년 여름의 ‘조국 전쟁’을 이끌었던 보수 논객이 숱하게 많지 않은가. 제일 유명한 그룹이 진중권을 포함한 ‘조국흑서 5인방’이다. 한때 언론의 총아였던 그들이 왜 몸을 사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국흑서 5인방’의 뒤를 이어 보수의 구세주로 활약했던 스타 논객이 또 있다. 2020년 여름 혜성처럼 등장해 2022년 대선 때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홀연히 사라진 조은산이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가?
조은산은 본명이 아니라 활동명일 것이다. 그는 2020년 8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긴 제목의 글을 올렸다. 언론이 ‘시무7조’라는 줄임말로 널리 알린 그 청원은 고려 초기 최승로가 성종에게 긴급한 현안과제를 이야기한 ‘시무28조(時務二十八條)’를 오마주 또는 패러디한 것으로 추정한다. 일주일이 지난 8월 19일 <일요신문>이 첫 보도를 냈고, <쿠키뉴스>는 청와대가 그 청원을 비공개 처리한 것을 게시판 조작이라고 비난했다.
8월 26일 <문화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문정부의 뼈를 때린 상소문’을 숨겼다고 청와대를 때렸다. 청와대는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들어 있었던 그 청원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의한 뒤 8월 27일 공개했다. 언론은 ‘시무7조’와 조은산에 대한 보도를 하루 수백 건씩 쏟아냈다. 출근하는 대통령실 수석과 장관을 붙들고 ‘시무7조’를 읽어봤는지 물었다. 반응하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또 정부를 ‘까는’ 기사를 썼다. ‘조은산’과 ‘시무7조’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청원은 게시판에서 44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고 규정에 따라 청와대 실무자가 답변했다. 언론이 하나마나 답변이라고 비난했다. 청원이 그런 답변밖에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했다.
역사극 대사 같은 7가지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의 횡설수설
‘시무7조’에서 조은산은 무슨 주장을 했는가? ‘민생 파탄’ ‘시장경제 퇴보’ ‘굴욕외교’로 인해 여론조사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50퍼센트 아래로 내려갔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꾸짖었다. ‘허황한 꿈’ ‘해괴한 말’ ‘미친 소리’ ‘배신자’라는 말로 조국·이해찬·김현미·노영민 등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를 비난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다음 일곱 가지를 요구했다. 문장이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어수선해서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만 추렸다.
1)소득세·상속세·법인세·종부세 등 세금을 줄여라.
2)보편복지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버리고 기업 규제를 철폐하라.
3)한일관계를 개선하고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라.
4)인간의 욕망 추구를 억압하는 부동산 규제를 철폐하라.
5)민주와 인권만 외치는 선동꾼·아첨꾼을 배격하고 자유를 함께 추구하는 인재를 등용하라.
6)토지거래 허가지역 지정 제도와 임대차 3법을 폐지하라.
7)적폐청산을 명분으로 한 정적 처단을 중단하고 낡은 이념과 복수심을 버려라.
어떤가? 대통령과 참모들이 일일이 대답할 필요가 있는 요구였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그때는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었던 국힘당, 조‧중‧동과 재벌 기관지인 경제신문들이 주장한 바로 그 정책이었다. 그래서 재벌언론‧족벌언론‧건설사언론은 ‘시무7조’를 역사적 가치가 있는 명문인양 추켜세웠다. 그러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리 평가한다. 조은산의 글은 극단적인 시장주의 이데올로기를 역사극 대사 같은 문장으로 포장한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평가도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미워하고 민주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조은산을 위대한 애국자로, ‘시무7조’를 역사의 명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보수언론이 명문장가로 떠받든 막말 범벅 ‘파워 블로거’
무슨 근거로? 책 판매 데이터가 있다. 조은산이 한 정치적 주장을 조은산 스타일의 문장으로 쓴 책으로는 시장에서 먹고 살기 어렵다. 2021년 8월 조은산은 <시무7조>(매일경제신문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이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추천했다. 윤석열·윤희숙·서민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들이 추천사를 썼다. 그러나 그 책은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딱 한 주 국내도서 베스트셀러 ‘TOP100’에 들었을 뿐이다. 딱 한 주였고, ‘TOP10’이 아니라 ‘TOP100’이었다. 교보문고와 알라딘의 판매실적과 독자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은산의 책은 별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도서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렇지만 기자들의 판단은 달랐다. 얼굴도 신분도 밝히지 않은, 서른아홉 살 먹은 직장인이라고만 알려진 조은산을, 우국충정 넘치는 명문장가로 떠받들었다. 조은산이 블로그에 무언가 쓰기만 하면, 말이 되는 글이든 아니든, 최대한 선정적인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특정 언론만 그렇게 한 게 아니었다. 극소수 중도 성향 신문, 방송을 제외하고 모든 언론사가 똑같았다. 정말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시무7조 조은산’을 키워드로 2020년 8월 19일부터 2022년 3월 15일까지, 포털 뉴스를 시간 순으로 검색해 보시라.
‘파워 블로거 조은산’의 언어와 문장은 정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극우 커뮤니티 댓글 수준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마다 막말을 섞어 썼다. 기자들은 정확하게 그 막말을 제목으로 뽑았다. 조은산이 누구를 어떤 막말로 비난했는지 몇몇 사례만 들겠다. ‘김현미 대신 붕어를 쓰고 추미애 대신 개를 써라’, ‘이낙연은 얼굴 하나 입 두 개인 기형생물’, ‘이재명은 뱀처럼 교활한 자’, ‘공수처라는 괴물’, ‘검찰개혁은 문재인 일가를 보호하려는 거대 사기극’, ‘김어준은 털 많고 탈 많은 음모론자’, ‘이재명의 입을 막을 헛소리 총량제 필요’, ‘OOO의 용모는 견적도 안 나오는 고생대 생물’.
“이재명은 뱀”, 밥 같이 먹은 윤석열은 “목줄 찬 이리떼 속 호랑이”
그런데 조은산이 만인에게 막말을 한 건 아니다. 나름 품격 있는 언어를 쓴 경우도 있었다. 누구를 평할 때 그랬는지 몇몇 대표 사례를 보겠다. ‘진중권은 관우‧장비같은 인물’, ‘너무나 큰 자산 금태섭을 잃은 민주당’, ‘목줄 찬 이리들 사이의 유일한 호랑이 윤석열’, ‘가련한 경력 부풀리기에 불과한 김건희의 이력서’. 막말과 칭찬 모두 기자들이 따옴표를 쳐서 인용한 기사에서 가져왔다. 조은산이 자신의 블로그를 비공개 처리한 탓에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밝혀둔다.
조은산은 2021년 7월 23일 윤석열을 만나 한 시간 반 정도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했다. 열흘 정도 뒤에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자 언론은 ‘복붙’ 기사를 쏟아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윤석열은 달변가였으나 모든 걸 안다는 듯 말하지 않고 모든 걸 받아들일 것처럼 말했다. 철학은 확고하고 말은 직설적이었다. 그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썼다. 윤석열이 콩 국물을 마시다 흘렸는데, 그것도 소탈한 모습이라며 호평했다. 대선 기간 내내 문재인과 이재명과 민주당 인사들을 조롱하고 저주했던 조은산은 대선 직후인 2022년 3월 14일 다음과 같이 작별 인사를 하고 블로그를 닫았다.
“여러분과 함께 2022년 3월을 맞이했음이 자랑스럽다. 다시 글을 쓴다면 신분을 밝히고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이후일 것이다. 당신이 글을 쓰지 않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어느 분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잠시 동안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살아가고 싶다.”
2년 반이 지났다. ‘잠시 동안’이라고 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절반 지났다. 조은산은 분명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나는 조은산의 본명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한 주장을 들었고 그가 쓴 글을 읽었다. 언론은 대선을 앞두고 1년 반 동안 조은산의 입에 막강한 확성기를 대주었다. 조은산뿐만 아니라 문재인과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난하는 모든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써먹었다. 그렇게 해서 윤석열의 득표율 0.7퍼센트 포인트 차이 승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조은산은 특별하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비평가 행세를 하는데도 언론이 스타 대우를 해준 사례는 그가 유일하다.
<시무7조> 시킨대로 한 윤석열이 위기인데 조은산은 어디 있나
조은산에게 묻는다. 왜 윤석열의 위기를 방관하고 있는가? 그토록 조은산을 띄웠던 언론은 왜 그를 불러내지 않는가. 윤석열 정권은 조은산 같은 저질 이념 선동가와 기득권 언론과 국힘당이 손잡고 만든 흉물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윤석열은 조은산이 ‘시무7조’에서 시킨 그대로 해왔다. 결과가 어떤가? 경제는 엉망이고 민생은 파탄이다. 경제성장률부터 무역수지, 기업투자를 포함한 국내수요, 재정수지, 환율, 물가, 주가지수, 실질소득과 분배지표까지 윤석열 취임 전보다 나아진 경제지표가 한 개도 없다. 윤석열은 국익과 민생을 돌보지 않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아무 한 일 없이 임기 절반을 보냈다. 검찰과 여당을 사유화했다. 공무원의 기본인 출퇴근 시간 준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통령 노릇은 하지 않고 임금님 놀이만 했다.
윤석열 정권이 조속히 철거해야 마땅한 흉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조은산은 ‘잠시 동안’ 누렸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공론의 광장으로 나와 논객으로서 정권을 수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흉물이라고 생각한다면 2020년 8월 ‘시무7조’를 쓴 때와 같은 자세로 윤석열 정권을 비판해야 마땅하다. 자신의 입에 확성기를 대주었던 언론과 함께 윤석열 정권이라는 흉물을 철거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흉물은 만든 사람이 치우는 게 상식 아닌가.
대통령실 청원게시판이 있으면 ‘우리 시대의 문장가 조은산 님을 찾아주세요’라는 청원을 등록하고 싶다. 하지만 윤석열이 청원게시판을 없애버려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언론에 공개 청원을 한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조은산이 용산 대통령실에 근무하고 있는데 내가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닐까? 만약 그런 사실이 확인된다면 나는 이 칼럼을 삭제해 달라고 <시민언론 민들레>에 요청할 생각이다. 윤석열 정권의 심장부에서 몸 바쳐 일하는 사람더러 직무를 유기한다고 비판해서야 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조은산 님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주기를 요청한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