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10월 7일까지 열리는 유영국의 <색채추상>전.
한국 모더니즘의 1세대 작가이자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유영국 화백의 작품이 큰 대중적 공감을 얻은 계기는 2016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한 <유영국 절대와 자유> 전시일 것이다.
누군가는 추상화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유영국의 그림을 보고 나면 그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듯 싶다.
화폭에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점과 선과 면, 색 등 극도로 단순화된 요소 뿐이지만, 그 안에 산과 바다 등 우리에게 친근한 자연 풍경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산'을 모티브로 면을 분할하고, 그 면을 아름답고 강렬한 색채로 채웠다. 그 산을 에워싼 눈 부신 빛도 보인다.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훅 들어오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풍경과 색이다.
그때를 놓친 많은 이들에게 유영국(1916~2002)의 작품 14점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3관에 전시된 캔버스 작품 9점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모던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통해 당시 원숙기에 들어섰던 작가의 추상 세계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자연의 모습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산을 소재로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절제된 구성의 작품들로 그의 생애 중 ‘원숙기’로 꼽히는 기간에 완성한 작품들로 유영국만의 추상 세계를 경험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한 일본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사진을 배운 그가 40년대 경주에서 분황사 탑 등을 찍은 사진도 함께 볼 수 있다. 대상의 기하학적 구조나 표면의 재질감에 주목한 작가의 시선이 돋보이는 사진들이다.
▒ 기간 2018.09.04(화)~2018.10.7(일)
▒ 시간 10:00 - 18:00(월~토) / 10:00 - 17:00(일/공휴일)
▒ 요금 무료
about 유영국 작가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을 이끌어 온 선구자이다. 1938년 일본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홍익대 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당시 강원도였던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20대 초반인 1930년대, 새로운 미술 사조가 밀려오는 일본에서 ‘추상미술’에 눈을 뜬 이후 평생토록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군국주의가 득세한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어부로, 한국전쟁 시에는 양조장을 운영하며 불안한 시대의 사상적 강요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전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묵묵한 올곧음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립한 화가로 기억된다.
서울과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한 유영국은 1937년 도쿄의 자유미술가협회에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그의 초기작은 회화가 아니라 나무판자 조각을 붙인 부조 작품. 일본 유학 시절에 자유로운 미술사조를 경험하고 영향력 있는 추상미술 화가들과 교류한 그는 1943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생계를 위해 10여 년간 그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당시 모던 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등 여러 미술 그룹을 이끌며 활발히 활동했다. 그런 작가 생활에 큰 전환점을 맞은 시기는 1964년.
그는 그룹활동을 중단하며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후 2002년 86세의 나이로 작고할 때까지 줄곧 혼자만의 작업을 이어갔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투병 생활을 했는데, 그 시기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생에 대한 예찬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타고난 체력과 사업가 기질로 고깃배는 만선이고 양조장에는 돈이 가득 쌓였지만 ‘그림 그리려면 먹고 살 정도면 된다’라는 지론으로 하루 8시간 이상 작업하는 치열한 예술의 길을 선택한 그는 진정한 직업 화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굴곡 많은 시대를 온전히 겪으면서도 예술에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한 화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예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는 한국의 자연을 점, 선, 면, 색 등 조형 요소들로 표현하며 추상회화에만 몰두한 작가다.
시대적 굴곡을 관통하며 살아오면서도 작품 안에서는 규칙에서 벗어나 한계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추상의 세계를 살았다. 자연을 바탕으로 한 그의 많은 작품에서는 대상을 구체화하지 않음으로써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 강한 힘이 느껴진다.
그가 대상화한 것은 산과 바다, 태양 등 여러 자연 요소들. 자연으로 둘러싸인 울진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산수의 풍경을 순수하게 추상적인 형태로 형상화하며 자연의 본질을 담아내려 했다.
그리고 빨강과 검정, 파랑과 보라 등 다양한 색채가 만나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긴장감을 형성한다.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원천적인 힘까지 담아낸 듯한 숭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몇 개의 붉은색 면, 검은색 삼각형, 그리고 빛처럼 가늘게 스친 두 개의 원과 직선 하나.
극도로 단순한 몇 개의 도형이 있을 뿐인데 화폭은 강렬하고, 풍부하고, 깊은 힘을 뿜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