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ㅣ부산현대미술관 '시간 밖의 기록자들'
전시회명 부산 현대미술관 『시간 밖의 기록자들 Chroniclers, Outsidw of time』'
전시장소 부산 현대미술관 지하1층 전시실 3, 5
전시시간 2019. 09. 11 - 2020. 02. 02 / 10:00-18:00 ((금,토 21:00 까지 운영)
참여작가 강신대, 김가람, 노재운, 남화연, 호 추 니엔(싱가포르), 요한 루프(오스트리아)
부산 현대미술관 https://www.busan.go.kr/moca
부산현대미술관은 멀리서 보면 초록색 카펫을 두른 네모난 초록박스처럼 보인다. 벽의 곳곳에 국내에 자생하는 약 175종의 식물을 심어 만든 수직 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학자이자 예술가인 패트릭 블랑의 수직정원으로 건립 초기 심지어는 미술관이 아닌 ‘대형 마트’ 같다는 비판까지 들었던 부산현대미술관이었지만, 국내 최대 규모의 수직정원이 생기면서 건물 외형 그 자체만으로도 미술관은 하나의 작품이 되었고, 그 미술관의 초록 벽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만큼이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듯 보였다.
'미술 전시와는 별개로 수직정원으로 인해 미술관 건축이라는 의미는 겨우 되살렸을지 모르지만, 건립 초기에서부터 미술관의 정체성이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도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미술관 건립을 위한 건축 공모의 부재 등 그저 건물 하나 짓는다는 구태적인 문화예술 행정이 역시 구조적인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시간 밖의 기록자들 Chroniclers, Outsidw of time』
작가들은 기술 혁신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 대중매체, 웹 기반 네트워크 사회 등 '감각적으로 소비되는 디지털 문명'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반추해 보는 작품을 선보인다.
《시간 밖의 기록자들》전은 현대 대중사회를 작동시키는 기술·문명적 조건 속에서 시도되는 ‘후-기억세대’로서 동시대 예술가들의 역사 기술 방법을 우회하여, 그 속에 내재된 우리 시대의 역사 인식 태도의 다층적 변화 양상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기술 혁신에 의해 구현되는 새로운 미디어와 대중 매체, 웹 기반 네트워크 사회를 기저로 한 정보 플랫폼의 등장은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적, 형식적 차원은 물론, 역사 인식 주체로서 각각의 개별자, 집단, 대중이 역사를 기억하고 경험하는 행위 전반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디지털 문명 가속화 시대의 매체 환경과 운영 체제 속에서 지식과 정보의 형태, 그 수용 방식이 변화하듯, 역사적 이미지, 자료, 정보 또한 다원화되어 자유자재로 소비되는 과정을 거듭하며 역사적 기억의 양을 무한히 증식시켜나가는 중이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보다 정교한 역사 쓰기와 읽기의 조건이 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의 불충분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인식의 질적 변화와 함께, 그 구조가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각각의 현대 주체는 역사적 시간성의 차원을 어떻게 마주하고 경험해나가고 있는가?
오늘날 현대 주체는 ‘웹’ 이라는 탈-물질화된 공간에 다종다양한 형태로 분화하여 집적되는 디지털화된 자료들과 마주한다.
그들은 역사적 현실성으로서 현실 세계를 점유한 현재적 위기 상황을 내밀하게 응시하기 위해, 이미 선별적으로 기록된, 즉, 역사적 연속성을 특징으로 직선적, 진보적 시간성의 축 위에서 기술된 세대를 초월하는 공적·학술적 역사 기록물에서부터 대중문화 혹은 하위문화의 한 범주로서 전자의 기록 혹은 보편사의 축 바깥에 잔존하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특정 서사를 구성해나가는 유사 역사 기록물, 여전히 공적 아카이브로 분류, 배열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 탈각된 문서들, 복제와 변형의 끊임없는 순환 구조를 반복하며 재생산되는 클립 형태의 시청각 자료들에 이르기까지, ‘실험실, 연구소,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사람들, 기술적 과정, 미디어, 기록 및 측정을 위한 장치들’로 이루어진 통제 불가능한 광범위한 범주의 네트워크 세계를 오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의 역사적 사유란 이미 주어진 다양한 형식의 역사 기록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넘어서는 간접적인 경유가 필연적임을, 역사적 기억이란 하나로 봉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것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읽어나가는 과정 속에 형성되는 역사의식의 토대 위에서 재차 변주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와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정하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 전시는 이러한 주변적 요소들을 끊임없이 배회하며 역사적 현실성을 재전유하고 감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 외부에 놓여 있는 존재들이자 재현된 역사적 시간성의 차원을 부단히 유영하며 역사적 기억이라는 서사 공간을 재구축해 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역사 인식에 있어 보다 정교하고 기민한 촉수를 요청받는 세대들을 가리켜 ‘후-기억세대’라 칭한다.
특히, 이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체제와 이념의 대립 속에서 하나의 시대를 결정짓거나 어떤 시대적 전환의 계기를 열어 놓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에 대한 직접 경험이 부재한, 즉 구체적인 역사적 경험이 실종된 곳에서 시작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후-기억세대로서 현대 주체가 현실 세계 곳곳에 산재한 부정성에 침잠되어 있는 긴장 관계를 간파하고, 살아있는 현실성으로서 역사적 시간성의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실제적 경험의 차원을 넘어, 재현된 역사의 표피 이면을 응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적 시대와 상응하는 후-기억세대로서 동시대 예술가들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탈구된 시간성 위를 거닐며 유약하게 구성되는 자신만의 역사적 기억을 토대로, 구체적인 현실성의 지표가 될 역사적 이미지를 다시금 발굴, 수집, 독해하는 리얼리즘적 형식과 이를 재단, 편집, 재배치하는 예술적-심미적 형식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역사 기술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법은 명증하게 객관화된 도큐먼트를 중심으로 역사적 아카이브를 구축한다거나, 구술, 증언, 인터뷰, 트라우마 등 실증적 증거의 효력을 지닌 것이라 간주되는 개인과 집단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거대 담론 역사로부터 배제되고 억압된 역사적 기억의 서사를 들춰내려는 기존의 역사 쓰기 메커니즘(mechanism)과는 전혀 다른 태세를 취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이미지와 디지털화 된 데이터를 ‘구글링’해 몽타주거나 대중매체의 소비재가 되기를 자처하기도 하며, 온라인 담론의 움직임을 모방하고,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등 디지털 시대의 리서치 방식과 그 기록 체계를 매개로 역사적 시간성을 탐색하고 기술해나간다.
이는 현대 기술 과학의 증식 속에서 출현한 역사적 필연성을 지닌 예술 형식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아카이브 세계를 유영하며, 복제와 변형, 재생산, 순환 등의 조작 방식에 의거하여 산출되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재독해함으로써 동시대라는 시공간이 ‘기술(technology)’에 의해 ‘기술(description)’되는지, 나아가 이렇게 재현된 세계가 우리의 역사적 기억과 사유 방식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반추할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