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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삼중통역자ㅣ국립현대미술관 청주

by 아트래블* 2021. 2. 10.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통역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 2021. 1. 26. - 2021. 5. 9.

 

지난 1월말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던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의 청주 전시로 이번 전시의 제목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다. 

 

미국 여행 당시 박래현은 여행가이드의 영어를 해석해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설명해주었고,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런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의 세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했던 그의 예술세계를 의미한다.

 

김기창, <화가 난 우향>, 1960년대, 종이에 채색, 68×86cm, 공간화랑

박래현은 김기창과의 결혼에 대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을만큼 결혼 후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키겠다는 열의가 넘치는 예술가였다. 

 

그러나 청각장애를 지닌 유명 화가의 아내, 네 자녀의 어머니, 예술가로서의 삶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집안일을 마친 밤 시간에야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고, 가족들은 늘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는 박래현을 남편이자 동료인 김기창은 그녀를 ‘부엉이’라고 불렀다. 

 

늘 깨어있었고 그래서 고단했고, 무척 예민할 수 밖에 없었던 박래현에 대한 김기창의 예리하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래현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1956년 대한미술협회전과 국전에서 각각 '이른 아침'과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화단의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1960년대 추상화의 물결 속에서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고,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한 뒤에는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했다. 7년 만에 돌아와 1974년에 연 귀국판화전으로 국내 미술계를 놀라게 했으나 1976년 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해 대중과 만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우향 박래현(1920-1976)은 일제강점기에 일본화를 배웠으나 해방 후에는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회화를 모색했을 뿐만 아니라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세계 화단과 교감할 수 있는 추상화, 태피스트리, 판화를 탐구했다.

 

섬유예술이 싹트기 시작했던 1960년대에 그가 선보인 태피스트리, 다양한 동판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70년대에 선보인 판화 작업들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박래현이 일반 대중에게 낯선 것은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화가 김기창의 아내’로 부각돼서였다.

 

'미술가 박래현'의 선구적인 미술 작업과 예술적 성취를 조명하는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덕수궁관에 이어 청주관에서 열리는 전시이다.

 

 

 

박래현, 화장, 1943, 종이에 채색, 131×154.7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래현, 노점, 1956, 종이에 채색, 267x210cm, MMCA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노점’ 1956년=시장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생활주변의 소재를 치밀한 화면 구성으로 표현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박래현의 대표작이다.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찾아 현대적 양식을 모색하려는 의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 단순화된 화면구성과 중간 채도의 색채가 돋보이며, 세련된 배색과 예리한 필선은 동양적인 멋이 담겨있다. 김홍도, 신윤복과 같은 조선시대 풍속 화가를 의식한 시도이기도 하며, 한국인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여성 생활풍속도라는 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