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팔순의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
윤석남, 자화상.(2017, 한지 위에 분채, 75x4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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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에 붓을 들었다. 그리고 40년, 만 여든을 앞두고 있는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서울 삼청동 학고재 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가 오는 11월 해외에서 열릴 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뮤지엄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 열릴 '세계의 초상화들'전으로, 그가 그린 어머니 초상은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으로 초대받았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윤석남(79) 이야기다. 그에게 전성기는 마흔에 처음 붓을 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지난 40년간 연 개인전만 23회에 달하지만, 2016년 영국 테이트 컬렉션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며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내년엔 아트바젤 홍콩에서 대형 설치작품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그를 학고재 전시장에서 만났을 때 그는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채색화를 잘 그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2015년부터 채색화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지금 우리 채색화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채색화가) 정말 아름답다. 보물도 이런 보물이 없다. 이것은 세계적인 보물이다"라고 했다.
지금 학고재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윤석남'은 특별하다. 주로 어머니를 주제로 40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그가 인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채색화 작품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가 들려준 얘기를 전한다.
'모성'의 뜻, 오해하지 마시라
"이 얘기 꼭 드리고 싶은데요, 여러분이 '모성'의 의미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요. 모성의 뜻을 편협하게 해석하면 오히려 반(反)여성적인 의미가 될 수 있어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모성은 나의 아이 낳고 키우는 그런 범주의 것이 아니라, 물질문명으로 파괴되고 있는 자연의 힘을 복원하고, 사랑하고, 보듬는 힘을 뜻합니다. 모순적인 우주의 삶 자체를 보듬을 수 있는 힘이 바로 모성이죠. 다시 말하는데 제가 말하고 싶은 모성은 아이 많이 낳아 키우자, 내 아이한테 희생하자, 그런 뜻의 모성이 아닙니다(웃음). "
왜 어머니 얘기를 해왔을까?
"제 어머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넘어 여성의 삶을 한 몸에 가진 강인한 존재로서 존경하는 거죠. 그림 시작하고 나 자신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 저는 어머니 얘기만 줄곧 했어요. 나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은 걱정되고 부담되고 어렵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이젠 아니에요."
윤석남, 자화상, 2017, 한지에 분채. [사진 학고재]
여성이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
"사실은 늘 하고 싶었던 것이 제가 좋아하는 제 주변의 여성 20여 명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남을 그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엔 딱 한 점, 제가 상상하며 그린 이매창 초상화만 빼고는 제 자화상만 내놓았어요. 저 자신을 그리는 것은 괜찮아요. 앞으로 초상화를 계속 그릴 수 있다면, 그때 다른 여성들을 맘껏 그려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우리나라 전통화 중에 여성 초상화는 거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자신을 그린 사람도 없었지만, 여성을 그려준 사람들도 없어요. 저는 그게 좀 억울하더라고요. 초상화는 그냥 초상화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살아온 여정을 표현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는 제 친구들이 살아온 얘기를 제가 꼭 작품으로 남기고 싶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저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있는 거죠. 붓을 들고 이런 걸 묻는 거예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세상에 왔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초상화 그리는 것은 이제 시작입니다."
왜 채색화인가?
윤석남 자화상. [사진 학고재]
"요즘 저는 우리 것의 이렇게 좋은 점을 그동안 어떻게 잊고 살았지?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채색화도 궁극적으론 다른 곳에서 우리나라에 흘러들어 왔겠지만, 우리 것의 매력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봅니다. 한지에 붓을 많이 써보니 이 붓이 표현할 수 있는 선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독특한 한국적 색채의 아름다움도 있고요. 생기발랄하면서 애환이 서려 있고,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있는 색이죠.
채색화의 또 다른 매력은 힘든 삶 가운데에서도 화폭에 꿈을 펼쳐 놓았다는 거예요. 너무 힘들고 가난하면 꿈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시대에도 그린 그림이 너무 밝은 거예요. 예를 들면, 물고기가 새랑 같이 날아다녀요.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화폭 안에서 모두 너무 자유로워요. 그런 꿈이 없었으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저는 그런생각을 하면서 채색화에 빠졌어요. 지금 저에겐 우리나라 전통 채색화 공부해 가면서 나 나름대로 어떻게 발전시킬까 하는 게 숙제에요."
윤석남의 설치작품 '핑크룸 5'. 혼합매체, 가변설치. [사진 학고재]
부수고 싶었던 나의 '핑크룸'
"1996년에 설치작품으로 첫 핑크룸을 선보인 이래 이번 전시에 설치한 게 다섯 번째 핑크룸이에요. 나이 오십이 넘어가고 나이 먹어 가니 나도 내 얘기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작한 작품이 핑크룸이었죠. 이게 형광 핑크인데요, 형광 핑크는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날카로운 것, 불안한 것입니다.
돌아보니, 내가 40대 그림 시작한 것은 나의 여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땐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할까' 하며 내가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그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민했죠. 경제적인 형편도 괜찮았고, 남편도 있었고, 남들이 보기엔 괜찮았는데 저는 왜 그런지 이유도 없이 불안하고 힘들었어요.
그때 제 모습을 여기에 형상화한 것이 핑크룸이에요.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화려한데 내면의아슬아슬한 감정을 여기 담았죠. 여기, 핑크 의자, 예쁘지만 불안해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안 앉으려고 합니다(웃음). "
페미니즘 작가로 불린다는 것
"지금도 생각나요. 만 마흔이던 해, 79년 4월에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살기 위해,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렸어요. 하지만 그땐 '여성주의' '페미니즘' 그런 말 어색하고 잘 몰랐어요. 1985년 김인순, 김진숙과 '시월 모임' 동인으로 활동하며 여성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죠.
그때 비로소 내가 그토록 불안해하고 힘들어했던 게 다르게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그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흐지부지' 살지 않았을까. 지금 그런 생각 하면 공포가 느껴질 정도죠.
당시 시어머니 모시며 잘살고 있었는데, 늘 내 안엔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난 가짜야, 그런 느낌이 있었죠. 요즘 세상 겉으로 많이 바뀐 거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바뀌었을까? 그렇게 묻고 싶네요.
그런데 왜 남편은 그리지 않느냐고요? 사실 남편도 그려볼까 시도한 적은 있었는데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안되는 건 안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얘기 가짜로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계속 여성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에서 스러져 간 한국 여성 모습을 제 화폭에 끌어내고 싶어요. 정말 이름 없는 여성들 혼을 끄집어내고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실력을 더 키워야 할 것 같네요."
윤석남 ,'우리는 모계가족'( 2018, 한지 위에 분채,70.5x47.5cm)[사진 학고재]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윤석남의 작품은 1980년대 여성에 대한 관습적 인식에 역행하면서 여성을 새로운 일상과 역사의 한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선구적 페미니스트"라며 "윤석남은 여성의 시각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돼온 여성들에 대한 억압된 기억을 개인적 서사를 통해 풀어내 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윤석남의 여성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니 때로는 위협적이며 무뚝뚝하며 동시에 친근하다. 그것은 그냥 우리 주변에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서울 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에서 자화상 앞에 선 윤석남 작가. [사진 학고재]
about 윤석남
1939년 만주 출생.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54년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6남매와 함께 자랐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내로, 또 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중 40세가 되던 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박두진 시인에게 서예를 배우고, 이종무 화백으로부터 드로잉과 회화 교습을 받았다. 어머니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다가 1982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83년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 그래픽 센터 등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나무를 이용해 입체감 있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1996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이중섭 미술상을 받았고,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원글. 중앙일보 - "'모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팔순의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