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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there/한국 Korea

윤이상 기념관ㅣ통영, 그곳에 가다

by *아트래블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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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기념관ㅣ통영, 그 곳에 가다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 

-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 선정 

 

‘20세기 중요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 

- 유럽의 평론가들 선정

 

 

작곡가 고 윤이상 선생. ⓒ 윤이상평화재단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선정 사상 최고의 거장 44인(20세기 인물 중에는 단 4명 포함)에 들었다는 이야기까지

굳이 꺼내지 않아도 세계 음악계에서 윤이상(1917~1995)의 위치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국을 대표하고, 통영을 대표하는 음악가 윤이상 기념관은 영통 시내 도천동에 자리하고 있다.

 

통영에 자리한 윤이상기념관

 

 

 2017년에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유럽 투어에 나선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윤이상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보훔ㆍ함부르크ㆍ하노버 등의 대형 공연장을 가득 채울 수 있었을만큼 고전음악의 본고장 유럽에서 그의 명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윤이상은 여전히 이념 논쟁의 인물이다. 

 

북한에 있는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보기 위해 방북하여 간첩으로 몰리는 등 그의 순수예술의지는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이상 기념관 입구

 

2010년 개관한 기념관이 지명을 딴 ‘도천테마기념관’으로 불려 오다가 그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해 9월에야 ‘윤이상기념관’으로 제 이름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사후 23년 만에 그의 유해가 통영으로 돌아왔고, 고향 바다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전의 바람에 따라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에 맞춰 통영국제음악당 인근 공터에 안치되었다.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 평화재단'의 게시물 중 일부를 읽어본다.     


1967년 6월 17일, 한국 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베를린에서 서울로 납치됨.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류된 윤이상은 부인과 함께 기소되어 12월 13일 제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음. 부인 이수자는 5년형을 받았으나 집행유예로 석방되고, 윤이상은 1968년 3월 13일 제2심에서 15년형 감형 처분, 이어 1968년 12월 5일에는 제3심에서 10년형으로 다시 감형.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이라는 누명을 쓰고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 납치되어 모진 고문과 가혹한 수형 생활을 당했다. 이응노 화백, 천상병 시인 등 34명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최고 사형 등 유죄를 선고한 이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꾸준한 구명 운동이 전개되어 결국 이 사건을 조작했던 정권은 2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윤이상을 독일로 돌려보냈다.

 

 

생전 유품들도 전시되어있다 ㅣ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의 음악은 정치 현실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동백림사건 때의 쓰라린 체험은 그의 작품에서 정치성이 짙어지는 데 한몫했다.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 '견우와 직녀 이야기'(77년)는 분단된 조국의 아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칸타타 '사선에서'(75년)는 나치에 의해 처형된 시인 하우스 호퍼의 시로 자유와 해방을 웅변한다.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81년)는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항의하는 뜻을 담았다. 그는 작고하기 1년 전인 94년에는 민주화 과정에서 분신한 이들에게 헌정하는 교향시 '화염에 싸인 천사'도 발표했다.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윤이상의 베를린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베를린하우스 ㅣ윤이상기념관

 

윤이상기념관 외관

 

 

 

 

 

소설가 박경리와 작곡가 윤이상이 공존하는 통영, 그 곳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통영 박경리 기념관  https://artravel.tistory.com/472

 

박경리 기념관ㅣ통영, 그곳에 가다

박경리 기념관ㅣ통영, 그곳에 가다 "(통영을)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artravel.tistory.com

 

 

 

윤이상, 그리고 동백림 간첩단 사건


1967년 7월 8일 우리나라의 중앙정보부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독일 베를린에 거점을 두고 암약하고 있는 간첩들을 대거 체포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중앙정보부원들은 6월 17일 윤이상을 베를린에서 서울로 납치했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던 세계적 화가 이응노도 이때 강제로 끌려 왔다. 이 일로 우리나라는 국가 신인도가 땅에 추락하고 세계적 인권 후진국으로 낙인이 찍혔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203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재판에 넘겼지만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적용된 예는 한 명도 없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러한 재판 결과는 동백림 사건 수사가 강제연행과 고문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세계적 여론의 압박에 못이겨 2년 만에 윤이상과 이응노를 석방했던 박정희 정권은 두 사람이 다시는 조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윤이상이 1995년, 이응노가 1989년에 타계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건을 조작한 박정희 정권만이 아니라 이른바 '문민 정부'라는 김영삼 정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