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0월이지만 올해 열린 여러 미술전시 가운데 가장 많은 방문을 했던 전시를 꼽는다면 '윤형근 회고전'이 아닐까 싶다.
이번이 세번째 관람, 아마 이번이 마지막 관람이라 생각되어 작품 하나하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회고전 1st https://artravel.tistory.com/110
[A' Photo]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회고전 2018.08.17 https://artravel.tistory.com/129
▒ 기간 2018. 12. 16 까지 / 4,000원 (서울관 관람권)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3, 4, 8 전시실
▲ 서울관 3, 4 전시실. ‘천지문’으로 명명했던 73년 이후 2007년 작고 때까지의 검정색 추상 연작들을 내걸었다.
▲ 윤형근 작가의 자화상
이전 '윤형근 회고전' 관련 글에도 있듯 이번 전시는 '한국 단색화의 거목' 으로 불리는 윤형근(1928~2007) 작가의 회고전으로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이다.
윤형근 작가의 회고전은 우리가 잘 몰랐던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대목을 짚어주고 있다. 원래 윤형근은 화단에서 화면을 온통 같은 색깔의 색면이나 선으로 뒤덮는 1970~80년대 단색조회화(모노크롬)의 대가로 유명하다.
그런데 전시되어있는 그의 작품을 보고있노라면 시간이 지날 수록 다른 모노크롬 작업들과 동류에 놓을 수 없는 전혀 다른 독창적 회화라는 사실이 뚜렷해진다.
▲ 1부에 선보이고 있는 작가의 초창기 소품그림들. 장인 김환기의 화풍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색조의 추상그림들이 많다.
▲▼ 그의 초기 소품들 또한 김환기 화풍의 압도적 영향을 보여준다. 푸른색 톤의 화면에 다채로운 색점들이 별처럼 빛나거나 종이 위에 푸른색의 선염이 번지는 김환기 스타일의 서정적 화면이다.
▲ 7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그의 작품에서는 점차 색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생전 자기 작품에 대해 '잔소리를 싹 빼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표현한 윤형근 작가의 말년작들은 흙처럼 푸근하면서도 자연스럽지만, 형상으로 부여잡기 어려운 한국적 현대미술의 참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즉 윤형근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답이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싹 빼버린 추상회화”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전시는 그렇게 화폭 안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간 한 예술가의 초상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발굴한 윤형근 작가의 자료와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작품들이 놓인 3, 4 전시장과는 동떨어진 다른 층에 마련된 8전시실에 재현된 작가의 생전 서교동 작업실 공간은 전시 동선이 끊어진 듯 단절된 느낌을 주는 것은 매우 아쉬웠다.
그럼에도 윤형근 작가의 좋은 작품에 대한 열정적인 해설을 해주는 도슨트가 있기에 그러한 아쉬움은 조금이나 덜어낼 수 있었다.
▲ 1973년 윤경근의 서교동 화실 모습
윤형근 작가는 화면에 흙의 정취를 담고 싶어 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천지문’이라고 명명한 그는 캔버스가 아닌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으로 작업했다.
77년 일기에 "언제부터 흙 빛깔이 좋아졌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나무 빛깔도(…)돌의 빛깔도 그렇다" 고 적었다. 이것이 "몸으로 맞은 바람과 서리(風霜)의 역사를 말해주는 아름다움" 이고, "흙이 되어가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작품명 <청다색 Burnt Umber & Ultramarine, 1973>
내 그림 명제(命題)를 천지문(天地門) 이라 해본다. 블루(Blue) 는 하늘이요, 엄버(Umber)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라 했고, (내 그림의) 구도(構圖)는 문(門) 이다. - 윤형근, 1977년 1월 일기 중에서
윤형근은 화면에 흙의 정취를 담고 싶어 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천지문’이라고 명명한 그는 캔버스가 아닌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으로 작업했다.
77년 일기에 "언제부터 흙 빛깔이 좋아졌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나무 빛깔도(…)돌의 빛깔도 그렇다" 고 적었다. 이것이 "몸으로 맞은 바람과 서리(風霜)의 역사를 말해주는 아름다움" 이고, "흙이 되어가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 윤형근의 1980년작 <다색>. 80년 5월 광주항쟁 소식을 듣고 울분을 느끼며 그린 작품이다. 피 흘리듯 먹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기둥의 자취가 강렬하다. 작가의 붓끝을 움직였을 격렬한 감정의 진폭을 짐작하게 한다. 피 흘리듯 먹물을 흩뿌리며 쓰러지는 기둥의 자취가 강렬하다. 작가의 붓끝을 움직였을 격렬한 감정의 진폭을 짐작하게 한다.
▲ 작품명 <다색 Burnt Umber, 1980>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된 이 그림으로 작가가 1980년 6월에 그린 작품이다. 윤형근 작가가 5월 광주 소식을 듣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당으로 나가 그렸다고 하는 그림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비스듬히 쓰러지는 듯한 큰 기둥이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형상으로 비친다. 당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은 작품이다.
80년대 후반 이후 윤형근의 작품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면은 더욱 단순해지고 색채는 검은색의 변주가 아닌 ‘순수한 검정’에 가까워졌다.
[우측] 작품명 <청다색 Burnt Umber & Ultramarine Blue, 1999>
작품명 <다색 Umber, 1988-1989>
▲ 8전시실에 재현된 작가 작업실 공간. ‘아버지’라고 불렀던 장인 김환기의 그림과 평소 아끼며 수집했던 옛가구, 도자기가 보인다. 벽면엔 말년 친구가 된 미니멀 거장 도널드 저드의 선반모양 조형물도 붙어있다.
▲ 윤형근 작가의 생전 서교동 작업실 공간을 재현해놓았다. 제 8전시실
▲ 작가가 생전에 작업 때 쓰던 큰붓이 가운데 놓여져있다.
▲ 김환기가 뉴욕에서 윤형근에게 보낸 엽서
윤형근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환기(1913~1974)의 제자이자 사위였다는 점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선 김환기의 영향이 짙게 보이는 초기작과 자기만의 화풍을 밀고 나간 후기작을 비교할 수 있다.
또한 8전시실에 전시되어진 김환기와 윤형근이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작품 등을 보는 재미도 발견할 수 있다.
▲ 평소에도 윤형근 작가는 장인인 김환기 작가에게 '아버지' 라는 호칭을 부를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가까웠다.
▲ 윤형근 작가의 일기와 작업노트
▲ 윤형근 작가의 기사 및 표지로 쓰인 그의 작품들
▲ 도슨트 추천 - 윤형근의 개인전 당시 인터뷰 영상
그는 2004년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일도 죽고, 한창기도 죽고, 조셉 러브도 죽고, 도널드 저드도 죽고, 황현욱이도 죽고, 나만 지금껏 살아 있고나. 내가 좋아하던 친구들은 다 죽었구나."
그리고, 2007년 그도 떠났다.